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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이사람] 이규태 대종상영화제 조직위원장 -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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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3-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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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대중음악 등 ‘문화’로 더 행복한 사회를 만들 겁니다. 돈이 없어 일상에 쪼들려도 마음이 즐거우면 기꺼이 다른 일을 찾아나설 수 있어요. 어려움 속에서 겪는 고통, 낙망, 좌절 등을 딱 끊어 줄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문화’입니다.”

이규태(63) 대종상영화제 조직위원장은 사실 영화 분야에선 ‘신출내기’다. 그런데 그가 지난 20여 년 동안 누구도 풀지 못한 숙제를 해냈다.

항상 공정성 시비에 휘말려 이제는 존재감마저 희미해져가던 대종상영화제 시상식을 올해 그가, ‘완전초보’가 아무런 구설이나 시비 없이 깔끔하게 치러낸 것이다. 이 위원장이 대종상과 인연을 맺은 것은 원로 배우 신영균 대종상영화제 명예이사장의 권유 때문이다.

“저를 눈여겨보셨던지 이 일은 돈으로만 해서는 안 되고 경륜이 있어야 하는데, 적임자다 싶어 권한다고 하시더군요. 대종상이 올해 50주년이라 정말 제대로 잘 치러야겠다는 열망이 그대로 내비치기에 수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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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대종상영화제 조직위원장은 “최고의 권위와 정통성을 부각시킬 수 있는 대종상의 브랜드 가치는 실로 엄청나게 큰 것”이라며 “내년에는 20∼30대 영화 마니아층을 겨냥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대종상의 위상을 확고히 하겠다”고 말했다.

“대부분 참석하신 분들이 현직을 떠난 지 너무 오래된 데다 시상자들도 올드한 분위기여서 대중들에게 인지도가 떨어지고, 공감대를 형성하기가 쉽지 않다는 걸 이미 그때 깨달았던 거죠.”

그는 영화제를 맡은 동안에는 자신의 구상대로 척척 진행해야겠다고 마음을 잡았다. ‘신영균’에서 ‘안성기’로 전반적 조율을 시도했다. 이에 따라 시상자와 수상자, 참석자 모두가 한층 젊어지고 더 널리 알려진 얼굴들로 바뀌었다. 한동안 대종상 시상식을 찾지 않았던 월드스타들이 회귀했고 한류스타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원로들께는 미리 양해를 구했어요. 대종상의 위상을 바로 세우려면 어차피 제일 먼저 수술해야 할 부분이었으니깐. 제가 일을 맡을 때 회계집행과 사무진행 등 일체의 권한을 행사하기로 확약받았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고 나니 여기저기서 태클이 들어오더라고요.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했듯 각종 관련 단체가 각기 다른 주문을 내놓으니 이를 조정하는 데 애를 먹기도 했습니다. 한국영화인총연합회와 협약을 맺었음에도 기존 기득권 세력들이 가처분신청을 내는 등 꾸준히 ‘흔들기’를 시도했고요.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문제점이 드러났지만, 제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굳건히 밀고 나가는 길밖에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이 위원장은 ‘공정성’이 영화제의 최대 관건이라고 분석하고 심사를 객관화, 투명화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그동안의 관례나 예우는 모두 무시하고 사회 각 분야별로 예심 심사위원들을 뽑은 뒤 전문성을 배려해 본심 심사위원들을 위촉했다.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기저기서 불만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특유의 끈기와 뚝심으로 맞섰다.

“국민의 사랑을 되찾는 영화제가 되어야지, 일부 영화인만의 잔치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불꽃놀이와 오케스트라 연주 등을 가미한 것도 대종상이 다시 본래의 모습을 찾고 일반인들에게 돌아온다는 의미를 부여하기 위함이었다.

“내년 행사는 보다 치밀하게 준비할 겁니다. 50주년을 채우고, 100주년을 향해 다시 시작하는 50년의 첫 해인 만큼 새 기분으로, 갈등과 대립을 없애고 함께 출발하는 거예요. 진짜 오염되지 않은 사람들로 구성해서 확고하게 대종상의 정통성을 되살릴 겁니다.”

그는 당일 치러지는 시상식으로 끝낼 일이 아니라 “20, 30대 영화 마니아층을 겨냥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50년이나 된 영화제 최고의 권위와 정통성을 부각시킬 수 있는 데다 개최지가 서울이라는 점 등을 고려해보면 대종상이 지닌 브랜드 가치가 엄청나게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산, 시간, 정서상의 문제가 있긴 하지만 하나씩 풀어나가야죠. ‘대종상’이란 말은 저도 어릴 때부터 듣고 자랐어요. 영화인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상이죠.”

이 위원장이 이처럼 별다른 생채기를 남기지 않고 큰일을 쓱싹 해결해 내는 데는 그가 지닌 ‘열정’이 한몫을 한다.

“모든 일은 열정이 가능케 합니다. 저는 사업을 통해 이를 깨달았어요. 사실 그간 손댄 사업들은 모두 처음 도전해서 이루어낸 것들입니다. 어떤 분야에 기초지식이나 경험을 쌓았다면 용이하긴 하겠지만, 설령 그러지 않았다 할지라도 ‘열정’만 있으면 그 분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고, 배우고 익히게 되며 결국 해내게 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는 ‘최선을 다하겠다’ 정도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기필코 해낸다는 각오로 ‘올인’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 아니면 내겐 물러설 퇴로가 없다는 자세로 달려들어야만 합니다.” 이 위원장의 프로필을 보면, 문화와는 거리가 먼 사람처럼 여겨져 다소 엉뚱하기까지 하다. 그는 방위사업 분야 국내 정상급 기업인 일광그룹의 회장이다. FX사업, 잠수함, 항공기 시물레이터, 대전차유도무기, 전자전훈련장비, 한국형 헬기 사업 등이 주업이다. 계열사인 ㈜일진하이테크는 전차와 병력을 적재하고 해안에 상륙하는 공기부양정을 비롯해 악천후시 지상 및 해상에서 표적을 탐지하고 위치를 측정하는 열상장비, 액체폭발물탐지기, 차량하부검색기 등을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문화에 눈을 뜬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2007년 설립한 ㈜폴라리스 엔터테인먼트도 계열사 가운데 하나다. 가수 김범수와 아이비, 밴드 럼블피쉬, 걸그룹 레이디스코드, 배우 양동근·최정원·오윤아·정호빈·박정철·정준·선우재덕·이켠 등이 소속되어 활동 중이다.

“문화가 미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 지 잘 알고 있습니다. 선(善)한 영향력에 초점을 맞추고 공익적 분야에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 시작한 일이에요.”

이 위원장은 “문화는 수익성만 보고 해서는 결코 안 되는 사업”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는 2010년 소속 연예인들과 함께 ‘일광폴라리스 문화사업 선포식’을 가졌다. 사회복지사업과 문화사업에는 적극 동참하며, 비영리사업에는 출연료나 보수를 받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청소년자살예방을 위한 자선음악회도 해마다 연다.

굳이 선포식을 가진 것은 “나도 모르게 영리를 추구하게 될까봐 선을 그어 놓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위원장은 살아가는 동안 스스로에게 세 가지를 엄격히 금하고 있다.

“주식 안 하고 복권 안 사고, 땅 투기 안 합니다. 요행으로 되는 일에는 내 삶을 허비하지 않아요.”

자신의 뜻으로 이뤄나가면 운이 저절로 따라붙지만 먼저 운이나 요행을 찾아 나서는 짓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스스로 노력한 결과의 산물로 기뻐하는 데 길들여진 거죠. 노력 없이 거저 얻어진 것으로는 즐거움을 전혀 느낄 수가 없어요.”

나이에 비해 보송보송한 피부와 40대 못지않은 체력을 유지하는 비결은 ‘긍적적인 마인드’라고 털어놓는다.

“위원장이든 회장이든 임원이든 사원이든 스트레스 받기는 마찬가지일 텐데, 잘못된 일은 빨리 탁 털어버리고 마음을 편히 다스립니다. 하하하.”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